지난 2003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둘러싸고 큰 사회적 논란이 일어나 바가 있습니다. 전교조와 인권단체들은 학생과 교사의 개인정보 통합 관리로 인한 개인정보 침해와 국가 감시의 위험성을 우려했습니다. 이 투쟁으로 한국에 ‘정보인권’이라는 말이 대중화되었고 개인정보 보호운동의 역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에도 개인정보보호법 제정과 감독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고 노회찬 의원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를 비롯한 인권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2004년에 개인정보보호법을 발의하였습니다.
결국 개인정보보호법은 2011년에 와서야 뒤늦게 제정되었지만, 부처이기주의에 밀려 감독기구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위상은 심의 기구 정도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다시 10년이 지나 올해 8월 5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중앙행정기관으로 재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2000년대 중반 당시에 고 노회찬 의원님과 인권단체들이 요구했던 개인정보 보호체계가 이제야 마련이 된 것이지요. 이조차 빅데이터, 인공지능 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한 개인정보 상업화를 대가로 한 것입니다.
여전히 한국의 정보인권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한국의 방역이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이면에는 한 사람의 과거 동선을 몇 시간만에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중심으로 연계, 통합될 수 있는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 휴대전화 실명제, 모든 거래를 기록으로 남기는 신용카드 시스템, 전국을 촘촘히 감시하는 CCTV 등 우리는 이미 실시간 감시가 가능한 물질적 조건 아래에서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신기술이라는 화려한 외피에 가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서 정보를 누가 통제할 것인가는 한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좌우하게 됩니다. 정보인권은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소수의 기업과 국가권력이 아니라 민중, 시민, 이용자, 소비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자율적이고 존엄한 삶을 위한 조건이자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기반입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지난 20년 동안 정보인권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습니다. 동시에 사회운동을 위한 독립 네트워크로서 진보적 사회운동의 온라인 활동과 연대를 지원해 왔습니다. 노회찬상은 그간의 활동에 대한 동지들의 인정과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정보인권이 더욱 성장하고 꽃 피울 수 있도록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앞장서겠습니다.
제2회 노회찬상을 수상하게 되어서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이 첫 발걸음을 시작했던 2003년, <전쟁없는세상>에 모인 병역거부자, 청년, 활동가들은 양심과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자들을 처벌해온 국가폭력의 역사를 끝내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일제시대에 이어 해방된 조국에서도 병역거부자는 감옥에 갔습니다. 국가폭력이 가장 극심했던 유신시대 때는 억지로 끌려간 훈련소에서 총을 들지 않는다고 맞아 죽는 병역거부자도 여럿 나왔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병역거부가 양심의 문제로 사회에 널리 알려졌지만, 병역거부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여전했습니다.
모두가 병역거부자를 손가락질 하던 시기에 <전쟁없는세상>과 손잡고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법안을 발의한 의원 중 한 분이 고 노회찬 의원이었습니다. 공익시설이나 단체에서 사회 취약계층의 보호, 요양, 자활 등의 업무나 소방, 의료 또는 구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골자로 한 당시 법안은 양심의 자유를 확립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이 보다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바랬던 고 노회찬의원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고 노회찬의원의 의정활동은 <전쟁없는세상>에게 큰 응원이자 힘이었습니다. 그의 공적은 <전쟁없는세상>이 병역거부자를 지원하고 대체복무제 마련을 위한 활동을 17년간 이어올 수 있었던 든든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2018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에서 병역거부를 인권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있었고, 이에 따라 대체복무제가 곧 시행될 예정입니다. <전쟁없는세상>도 신발 끈을 다시 조이고 있습니다. 헌정사상 최초의 대체복무제 도입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무색하게 전 세계에서 가장 긴 복무기간이라든가 교정시설로 한정지은 복무영역, 현역 군인의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 등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대체복무제가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제도가 되도록 만들어 내는 일, 대체복무제가 평화와 안보의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도록 하는 일들에 <전쟁없는세상>은 앞으로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전쟁없는세상>을 제2회 노회찬상 수상단체로 선정하신 건 이 과제들을 잘 해내라는 응원이자 당부일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와 평등 실현을 향한 고결한 꿈을 꾸었던 고 노회찬 의원을 기억하며 <전쟁없는세상>도 그 꿈을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